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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자료 세메의 극의 -다니구찌 선생

2008.07.23 00:08

솔나무 조회 수:2831


 

다니구찌 범사가 동경고등사범학교(現 쯔꾸바대학)에서 검도수련을 쌓고 있었던 무렵 "劍聖" 다까노는 이미 여든을 넘어선 고령이었다.
다니구찌 범사에게 다까노 선생은 거의 하늘같은 존재였지만 운 좋게도 2년간, 다까노 선생의 시중을 들은 경험이 있다.
그 때에 다니구찌 범사는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었다.
다까노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던 마지막 연배인 다니구찌 범사에게서 다까노 선생이 말했던 세메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또 자신의 劍道觀과 오끼나와(沖繩)에서 개최되었던 8단 대회에 관해서 소감을 들었다.

[거리를 좁히는 것]과 [세메하는 것]의 차이

나는 동경고등사범학교 시절에 2년간 다까노 선생의 시중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1주일에 두 번 정도 고등사범학교에 고문으로 나오고 계셨습니다. 선생은 노후의 몸으로 수련을 하시다가 손가락을 다치셔서 내가 선생을 모시면서, 전차표를 사드리는 등 시중을 들었던 것이지요.


고등사범학교에서 오쯔까(大塚) 역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립니다. 그 중간에 小石川 공원이 있었는데, 선생은 종종 그 공원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곤 하셨습니다. 나로서는 하늘같은 분이셨기 때문에 뒤에 저만큼 물러서서 대기하고 있으면 선생이 가볍게 말을 걸어오셨지요. 2년 동안 배웅해 드리면서 그런 시간들을 통하여 검도의 理合에 대한 것들을 상당히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은 선생에게서 2년 동안에 들었던 세메(攻め)에 대한 이론입니다. 나는 다까노 선생의 마지막 제자인데, 선생으로부터 전수 받은 것을 다시 후대에 전해 주지 못 하면 다까노 선생이 말씀하신 훌륭한 이론이 잊혀져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군요.


세메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거리(間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칼끝과 칼끝이 교차되는 거리를 정간(正間)이라고 하고, 거기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근간(近間), 칼끝이 교차되는 거리에서 떨어지면 원간(遠間)이라고 합니다. 검도는 정간의 승부입니다. 흔히 잘못 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만, 정간에서 일보 앞으로 쓱- 들어가는 것 자체를 세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냥[앞으로 나가는](前に出た) 것과 세메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검도를 논할 때 하나의 경계선, 분수령이 있습니다. 소위 높은 단위(段位)를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기준선이지요. 이 분수령을 넘은 사람은 세메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넘지 못 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어떤 감독이 제자에게 [세메를 하라]고 주문하면 제자는 단지 근간으로 거리를 좁히는 수준에서 행할 뿐입니다. 세메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지요.


검도의 기본적인 개념은 [氣로 세메해서 理로 친다]는 것입니다. 또는 [氣로 이겨서 理로 친다]는 것이 진정한 理合입니다. 그리고 세메하는 이유는 타돌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세메하는 것입니다. 단지 거리를 좁히는 것은 세메가 아닙니다. 세메의 본질은 타돌의 기회를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단순히 앞으로 나가는 것으로만 보일 지 모르지만,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기로써 이기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기로써 이긴다], [기로써 세메한다]는 것은 타돌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이죠. 그 理合이 검도의 기본적 사고입니다.


그러면 타돌의 기회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가 뒤따르게 됩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 기회를 위해서 어떤 식으로 세메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타돌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세메하는 것인데, 타돌의 기회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를 우선 알아야 되겠죠. 다까노 선생은 타돌의 호기(好機)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상대의 實을 피하고 虛를 쳐라]는 것입니다. 실이라는 것은 상대의 기백, 검, 체가 충실한 경우입니다.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상대가 [들어가겠다!]라고 준비된 때가 실입니다. 그런 때에는 피해야 합니다. 상대가 받을 때나 이쪽의 세메에 상대가 놀라서 물러날 때가 허입니다. 그런 허를 치는 것입니다. 기가 빠져 있을 때도 그렇습니다. 신체가 피곤하면 기가 빠집니다. 기백이 결하여 있는 경우, 치려고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경우, 체세가 붕괴된 경우가 허입니다. 실을 피하여 허를 친다, 이것이 검도에 있어서 타돌 기회의 제 1조건입니다.


두번째는 상대가 움직이는 찰나(오꼬리)입니다. 신체의 오꼬리, 기술이 나오는 초동을 칩니다. 그래서 직선으로 세메하든, 비스듬히 세메하든 간에 그런(움직이면 친다는) 의도로 세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로 그것이 있기 때문에 세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백이 이기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세번째는 다까노 선생이 [孤疑心](こぎしん)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대가 강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孤疑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孤疑의 마음이 보일 때에는 즉시 쳐들어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다음은 상대가 거착 (居着き) 상태에 있는 경우입니다. 거착이라는 것은 발이 앞으로 나가는 자세가 아니고, 뒤로 걸려 있는 상태입니다. 결국 발꿈치가 침상에 붙어서 발끝이 올라가 있을 때입니다. 또는 양족이 열려 있는 때입니다.


그리고 [상대를 서두르게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도 기술도 서두르게 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위력 없이 [불안하게 뻗는 정도의 타격을 한다]는 것은 이쪽의 지킴(守り)이 견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의 기술이 초조해져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에게 동작을 서두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타돌을 강하게 해야 합니다. 격렬하게 강하게 하면 반드시 상대는 급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상대의 기술이 다한 때입니다. 이쪽이 연속 기술로 가면 상대가 방어하는 자세로 되어 나오는 기술이 없는 경우를 盡きる(つきる)라고 합니다. 또한, 이쪽이 응하거나 받아흘리거나 해서 상대가 무엇을 쳐도 전혀 기술이 통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느끼는 때입니다. 기술이 다한 때는 두 다리가 멎어버리고 맙니다.


이것을 다까노 선생은 6번째의 타격의 호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서 선생님은 곧잘 [오늘은 세메를 심하게 당해 기술을 내지 못하더구먼(盡きる)]라고 지적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 어떻게 하는가는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거착이었다. 두려워서 나가지 못 했다. 그러면 이렇게 해봐라]라고는 절대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열이면 열 다 다르기 때문이고,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것이라는 의미였겠죠.


그래서 반대로 [허락해서는 안 될 세 가지]가 나오게 됩니다. 검도의 타돌에 있어서는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는 상대가 받아 저지한 순간입니다. 이 순간 소위 제2의 칼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한번 쳐서 상대에게 막히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갑니다. 또는 여전히 똑같은 곳을 공격합니다. 그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 머리 기술로 갔으면 아래 기술로 가야 합니다. 검도의 타돌은 원 운동이기 때문에 머리는 당겨베기(引き斬り)로 자르는 것입니다. 원 운동이라면 위를 공격해서 상대에게 막혔다면 자연스럽게 밑으로 갑니다. 손목을 공격했는데 상대가 빼거나 받아버리면 위로 갑니다. 또는 거리가 멀면 손목→손목→머리로 갑니다. 이것이 칼의 길(太刀筋)입니다. 지금의 검도 는 찌르듯 쳐들어갑니다. 찌르듯 들어가는 기술은 원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 기술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학생의 시합을 보면 일족 이도 즉 한 스텝에 두 번 세 번 치고 있지만 그렇게 하면 잘라지지 않습니다. 선생은 일족 일도, 한 발에 한 번 치는 것, 이것이 검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배웠던 검도는 [자르는 검도]였는데, 지금의 사람들은 [맞추는 검도]로 되고 있습니다. 전일본선수권을 보면, 나는 그런 식으로 맞추어 낼 수는 없지만, 검도가 아닌 검도시합을 매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3불허의 두 번째는 움직임의 기색(起こり頭)입니다. 오꼬리는 몸의 오꼬리에 대한 것인데 더욱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허리의 움직임과 손잡이(手元)의 오꼬리. 이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 경우 그 부분만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먼 산 보기]와 미야모토 무사시의 말대로 [紅葉 보기]라고도 말합니다. 가을에 단풍잎을 하나 하나 보면 제 맛을 느끼지 못 합니다. 그래서 멀리를 가깝게 볼 것. 상대에게는 반대로 보이게 하는 느낌으로 자세를 취하면 참으로 그러한 자세로 된다고 합니다. 똑같은 신장이라도 상대에게는 멀고 자기에게는 가깝다. 그러한 것은 실제로는 없겠지만 심리적으로 그렇게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가는 듣지 못 했습니다. 禪과 같은 문제입니다. 公案을 던져주셨기 때문에 어떻게 자신의 자세가 상대에게 크게 보일 수 있을까를 연습을 해서 생각했습니다. 자주, 상대의 죽도가 크게 보인다고 말들 하지요.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연습의 양에 의해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도 다까노 선생에게 들어가면 선생의 죽도가 팍-(힘을 주어 단숨에, 강력하게 순간적으로) 좁혀 들어와 큰 파도에 휩쓸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몸이 순간 정지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개를 허락하면 안된다는 점과 앞에서 언급한 6개의 타돌의 기회. 이것을 쌓아 가면 三殺法이라는 것이 이해되어집니다.



3살법이라는 것은 劍을 죽이고, 技를 죽이고, 氣를 죽인다는 세 개입니다.
먼저 상대의 칼을 죽이는 것인데, 상대의 칼이 살아 있을 때 쳐들어가면 목을 찔리거나 혹은 받아치기를 당합니다. 그래서 상대의 칼끝을 진단하여 그것을 치고, 두드리고, 쳐내립니다. 그렇게 해서 칼끝을 죽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사시는 치고, 두드리고 털어내고 스쳐민다고 했지요. 자주 칼끝을 톡톡거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러한 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과 단지 방해가 되어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단자 선생들은 正間에서 칼을 맞추고 있으면 상대의 칼끝이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가 가늠되어 온다고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감을 느끼지 못 하는 사람은 고단위 심사에 합격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도 됩니다. 技를 죽인다는 것은 상대의 체격을 통하여 간파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강의 이야기지만 키가 작은 사람은 연속 기술에 능하고 좌우의 움직임이 빠릅니다. 신장이 좋은 사람은 반대로 좌우의 움직임이 늦고 기술이 단조로울 지는 모르지만, 손만 뻗어도 닿을 만큼 타격 거리가 멉니다. 그러한 것을 빨리 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技를 죽이기 위해서는 중단의 자세의 [정안의 5법]을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죽도의 연장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에 따라 명칭이 달라집니다. 죽도가 곧기 때문에 그 끝에 또 하나의 죽도를 이어보면 잘 이해됩니다. 칼끝을 이마에 겨누는 것을 晴眼. 왼눈을 겨누는 것을 靑眼이라고 하는데, 보통 세이간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칼끝을 미간에 붙이는 것을 星眼, 목에 붙이는 것을 正眼, 배꼽에 붙이는 것을 臍眼이라고 합니다. 칼끝을 살리기 위해서는 키가 큰 사람에게는 晴眼, 상단에 대해서는 靑眼, 키가 비슷한 경우에는 正眼, 키가 작은 사람에게는 臍眼을 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식으로 해서 생각해 보면, 단순히 [세메는 어떻게 공격하는가] 라는 문제는 論으로 되지 않습니다. 왜 세메하는가의 문제가 하나의 論이 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타돌을 위해서 세메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메의 방법에는 삼살법, 타돌의 6기회, 3불허가 있습니다. 이 12가지를 확실하게 머리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단순히 그냥 거리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그 호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세메인 것입니다.



그래서 궁도에서 [기회(機)가 무르익었으면서 아직 발사하지 않은 상태를 中(あたる)]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기회가 무르익었을 때에는 화살을 쏘기 전에 이미 명중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검도에서도 기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술을 내지 말라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氣로 세메하여 이길 때 기술을 내라. 그러한 것을 알지 못 하고 기술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맞히기( てっこ) 검도 시정의 일고찰

일족일도의 거리에서 기백, 技, 를 일치시켜 쳐야 될 곳을 정확하게 쳐야 합니다. 정확하게라는 것은 강함이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찌르는 타격일 뿐입니다. 그래서 면금을 맞추기만 하는 수준의 머리치기는 한판으로 잡아주어서는 안 됩니다. 머리를 빼면 죽도가 닿지 않기 때문이죠.


타격의 강함을 보여주는 한 수단이 소리(音)입니다. 죽도의 사에로 생기는 펑-하는 소리. 북을 제대로 칠 때 나오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는 데노우찌의 수련에 의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눌러 내리치는 타격에는 경쾌한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난청인 사람이 심판을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래 스포츠에 있어서는 반칙의 한도 직전까지 룰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이 훌륭한 명 스포츠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검도에서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 옛날 검도와 지금 검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반칙의 한도 직전까지 최대한 이용하라는 것이 요즘 고등학교의 지도법입니다. 그래서 체력에 의존한 빠른 타격과 변화를 가르치고 지도자 자신도 그러한 검도로 8단 심사에 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8단 심사는 그런 수준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8단 심사는 자를 수 있는가 없는가, 理合을 이해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보는 것이기 때문이죠. 죽도를 빨리 치거나 아무리 체력으로 친다 해도 8단에는 통과될 수 없습니다. 그 차이를 잘 알고 있지 않으면 8단은 절대로 합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지금의 검도를 보고 있으면 이전 검도와는 격이 다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전통적인 문화유산이라고 치켜올려도 옛날의 모습(姿)은 아닙니다. 源流는 요즘 검도가 아니라 옛날 검도이니, 결코 비관할 것은 아니지만, 단지 우리들이 볼 때는 마음이 섭섭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전후에 한때 복싱을 7년 정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복싱은 인파이트(품으로 들어가서 공격하는 것)로 들어가면 때릴 수 있습니다. 검도가 때리는 것이 전부라면 복싱과 다를 게 없습니다. 복싱을 한 후에는 시나이경기도 해본 적이 있습니다. 32년의 國體 (국민체육대회)에서는 죽도경기에서 우승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맞추기 시합( てっこ)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맞추는 거라면 지금도 복싱 스타일로 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죽도경기는 맞추는 경기여서 검도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다까노 선생에게서 귀하게 얻은 가르침이 엉망으로 되어버릴 것 같아, 3번째 대회에서 트로피를 반납함과 동시에 죽도경기를 포기하고 검도에 전념했습니다.


   지금의 보고 싶지 않은 '맞추기 검도'를 하려면, 차라리 시합에서는 가죽낭 죽도(袋竹刀)로 하면 좋겠습니다. 연습에서는 도구를 착용해도 좋지만, 시합에서는 맨 얼굴에 맨 손목으로 가죽낭 죽도를 사용하여 시합을 하는 것이죠. 그러면 진정한 검도의 정신론이나 기백, 단련이라고 했던 것이 살아날 겁니다. 아이키도(合氣道)나 가라데(空手)에는 보호 장비가 없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부상자를 실어 나르기도 하잖아요. 그 정도의 진검다움(眞劍さ)이 있다면 무술이라는 것이 전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전후에 시나이경기(撓競技)가 시작되어 제1회 죽도경기 동서대항전이 오사카에서 열렸습니다. 거기에 나는 서군의 선봉으로 출전했습니다. 그 때의 모범연습으로 모찌다(持田) 선생과 오가와(小川) 선생이 5명 연속 지도연습(五人掛け稽古)을 했습니다. 선제 공격 측도 이노우에(井上) 선배나 나까노(中野) 선배같은 쟁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기서 모찌다 선생과 오가와 선생은 가죽낭 죽도를 진검(刀)처럼 다루었습니다. 둥근 것인데도 진검처럼 다루어 사에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타격 소리도 북소리처럼 울렸습니다. 나로서는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8단으로서의 머리치기를 보여준 야마다(山田)

  오끼나와(沖繩)에서 열렸던 8단 대회에서 구마모토(熊本)의 아마다(山田) 군이 우승을 했는데, 2회전 쯤 가니까 이미 주위에서 야마다가 우승할 것 같다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앞에서 옛날의 검도와는 다르다는 말을 했는데 옛날의 검도에 근접한 선수가 야마다 선수였습니다. 다른 선수들의 머리치기는 8단의 머리치기가 못 되었습니다. 가벼웠습니다. 몸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야마다 군은 칼에 몸이 실리고 있었습니다. 체중이 60㎏인 사람은 60㎏의 힘이 칼에 전달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거기에 세메해서 칠 경우에는 가속도가 붙기 때문에 친 순간에는 70㎏, 80㎏으로도 됩니다. 그것이 다른 선수에게서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중심을 세메하라고 사람들은 곧잘 말하곤 합니다. 같은 말이지만, 나는 [자신의 검의 중심을 지켜라]라고 말합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자세를 무너뜨리지 말라는 것이 됩니다. 중단 자세는 오른손과 오른발이 앞으로 나가 있기 때문에 왼주먹이 정중선 한가운데 있으면 부자연스럽습니다. 전중선에서 왼주먹은 손가락 하나 둘 정도 벗어나 있는 것이 적당한 자리입니다. 그 자세를 무너뜨려서는 안 됩니다.


   또한 야마다 군은 자신의 방어가 견고하더군요. 방어가 견고하다는 것은 틈(隙)이 없다. 혹은 틈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틈이 생기는 것은 왼주먹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왼주먹이 움직이면 칼끝이 움직여버립니다. 그는 왼주먹이 확실하게 상대의 목을 겨누고 있습니다. 보통은 칼끝을 붙인다고 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칼에서는 왼주먹을 보내는 손(送り手)이라고 하고, 오른손은 되돌리는 손(返し手)이라고 해서 기술을 되돌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올바로 행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다 선수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우승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야마다 군은 작년의 동서대항전에서 패한 적이 있는데, 각별히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나는 매년 한 번은 구마모토에 2박3일로 연습을 하는 기회가 있는데, 그때 야마다 군은 첫날에는 꼼짝 않고 나의 연습을 하루 종일 지켜봅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내게 지도연습을 들어옵니다. 그는 그 만큼 연구심이 왕성하지요. 나도 야마다 군과 할 때에는 진검 승부의 마음으로 임합니다.


그런데 준결승에서 동경의 야노(矢野) 군과 시합을 할 때에 세메해서 그치고, 세메해서 그치고를 반복하더군요. 야마다 군이 세메해 들어가서는 원 위치로 돌아오면, 이번에는 야노 군이 세메하다 다시 원 위치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주심을 맡고 있던 호리다(堀田) 군이 [기술을 내라]고 주의를 주었는데, 그러한 지적은 잘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심판 규칙에는 없지만, 이전에는 이런 것이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은 지나치게 세부적으로 룰을 규정해 놓은 탓에 룰에 얽매여서 진정한 검도 시합이 진행되기 어렵습니다. 이전에는 단지 득점 여부의 판정만을 했기 때문에 기술을 내지 않으면 중지해서 [기술을 내라]고 심판은 주의를 주곤 했습니다.


마땅히 타격해야 할 때인데도, 서로 이기려고 하는 마음이 강한 나머지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즉시 빠져버립니다.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세메를 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正間의 거리에서는 일족일도로 머리치기를 하면 짧습니다. 그래서 다까노 선생은 [자기의 타격 거리를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족일도로 정확하게 정수리를 가격할 수 있는 거리를 자신의 거리로 만들라는 것이죠. 물론 키가 작은 사람과 할 때와 큰 사람과 할 때는 그 들어가는 거리가 다르겠지요.


다른 시합을 보고 생각한 것인데, 허리를 한 손으로 치는(왼손을 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한판으로 잡아주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주위 사람들과 심각하게 의논을 했습니다만, 빼어허리(拔き胴)를 한 손으로 치는 것은 고등학생 정도까지만 인정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8단 정도면 양손으로 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때 친 후의 제 2의 칼, 즉 존심이 없습니다. 등을 보이고 도망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등학생의 허리치기입니다. 그것을 유효타격으로 잡아주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존심이라는 것은 제 2의 칼을 낼 수 있는 몸 자세, 氣 자세입니다. 한 손으로 치고 도망가는 자세에서 제 2의 칼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 해도 그것은 맞추는 허리치기밖에 될 수 없습니다. 일도양단의 허리는 즉시 제 2의 칼이 나올 수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理合을 이해하고 있지 못 합니다.


결승의 야마다 군은 빈틈이 없었습니다. 도다(戶田) 군은 좌상단의 명수지요. 그래서 야마다 군은 이도(二刀)를 든 도다의 대도만을 신경 썼습니다. 소도 쪽은 전혀 문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 시합에서 도다 군은 전혀 소도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친 것이죠. 도다 군은 대도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생기 있는(いきつく) 先은 호흡법으로 이루어진다.

삼살법의 마지막 단계는 [氣를 죽인다]는 것인데, 이 기백이라는 것은 초보 단계에는 [야-]하는 발성에서 시작합니다. 발성에는 다섯 가지 소리가 있습니다. 밖으로 내뱉는 소리와 안으로 조여 닫는 소리 두 종류로 나누어, [야-], [ 에이-], [도-]는 밖으로 내는 소리고, [이-] [핫]은 자신의 中田, 下田으로 밀어 넣는 소리입니다.(中田, 下田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음) 그래서 처음에 [야- 야-] 라고 했는데, 이 때에는 토하고(吐く:はく) 있어서 치기 직전에 순간적으로 숨을 들여 마시게(吸う:すう) 됩니다. 그 때는 한 순간 동작이 정지해 버립니다. 익숙하게 되면 그 소리의 발성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 할 정도가 됩니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산소가 몸 속에서 연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들여 마신 산소가 혈액 안에 돌아다니는 것이죠. 그것을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숨을 멈춥니다. 소위 氣라는 것을 저장(溜める)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호흡에는 吸氣와 呼氣가 있는데, 흡기를 지나치게 길게 들여마시면 그것이 혈액 안에 들어가서 진신에 팍 힘이 들어갑니다. 그것을 田(でん)이라고 합니다. 기가 앞머리(前頭)에 모이는 것이 上田, 심장에 모이는 것이 中田, 아랫배(下 )가 下田입니다. 이것은 중국의 무술에서 온 것 같습니다. 중국쪽에서는 오로지 기술보다는 氣를 중시합니다. 창 끝이 목에 닿고 있는데도 곧장 찌르지 않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기백이며 이것이 진정한 무술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氣의 수련이 검도의 종착(最後)이 되는 것이지요. 다까노 선생도 [검도는 생기 있는 동작이 호흡에서 이루어진다](いきつくところは呼吸になる)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호흡법을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은 나이를 먹게 되면 검도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지요. 호흡법에서는 氣를 어디에 집중시키는가가 중요합니다. 통상 우리들은 언제나 下田에 기를 담아 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正間일 때에는 上田에 기를 모아 둡니다. 前頭葉은 情意작용을 합니다. 관찰, 숙고, 사고 등의 활동을 情意작용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前頭葉이 행하는 것입니다. 正間일 때에는 여기에 기를 담아두고,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前頭葉으로 크게 보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점점 거리가 좁혀지는 경우에는 中田, 즉 심장으로까지 기를 내립니다. 그리고 치려고 하는 순간에는 下田에 기를 넣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중국의 武道는 그런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 * *

理合은 매일 수련하는 가운데 하나의 기초가 되는 기둥으로, 불교로 말한다면 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합을 알고 있지 못 하면 기술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이합을 알고 있다고 반드시 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불경을 안다고 해도 그대로 행하지는 못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합을 머리 속에 넣고 있지 않으면 그것이 기술로 살아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시합을 할 때에는 머리 속에는 아무 생각도 없어야 합니다. 신체가 깨닫고 있어서 몸이 시키는 대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검도입니다. 매일 신체가 깨닫도록 수련하여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無]라고 다까노 선생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얘기를 했지만, 나 자신, 이합과, 타돌의 호기에 대해서 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삼살법에 관해서는 그때 조금 감이 잡힐까 말까 정도였습니다. 다까노 선생도 삼살법은 상당히 수련을 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때 다까노 선생은 나를 가부끼 공연에 데리고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다까노 선생은 [발걸음을 잘 봐라]고 말씀하시는 거였습니다. 몇 년인가 지나서 이해한 것이었지만, 그 때의 발의 동작이 찻잔이나 화분을 들고 다다미 이음선(目)을 따라서 걷는 경우와 동일했습니다. 그때의 발의 움직임은 [땅을 밟는 것을 물과 같이 물 밟는 것을 땅과 같이]입니다. 이것이 검도의 발다루기이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참된 기술은 나오지 않는다고 다까노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몇 년 전의 일입니다만, 전일본선수권에서 거합의 연무를 하신 선생도 똑같은 발 움직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거합의 아름다움이라든가, 太刀의 흐름이라든가 그런 거합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것이야말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 진정한 거합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끼나와의 대회에서 시합 전에 琉球 무용의 연무가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있으면, 그것도 똑같은 발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발 모양은 허리가 말뚝이 박힌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다까노 선생의 말씀의 의미가 오끼나와를 연상해야 겨우 이해되어져 올 정도였으니까요.(웃음) 삼살법이라고는, 세 개 가운데 하나도 체득하고 있지 못 합니다. 학생 시절에 그것이 足の踏み란 말로 배워듣고 내내 잘못 알아왔던 것이지요. 그러한 것이지요, 검도라는 것은. 맞추기 시합이라면 그러한 이합이 큰 의미를 지니지 않겠지만도…